첫번째 소신

그녀는 다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관계
때때로 관계는 그녀를 억압하고, 궁지로 몰아내고, 어디론가 숨게 만들지만 대부분의 것들은 그와 반대의 감정을 준다.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어나가고자 하는 강한 - 혹은 약할지언정 예의 바른 의지다.

두번째 소신

열정이 오래도록 지속되기엔 어려울 때가 많다.

열정
그것은 모종의 다양한 이유들로 인해 간헐적으로 이어지는데, 그럼에도 특정 주제에 한해 명맥이 끊기지 않을 때가 있다.
그녀의 경우 삶을 기록하는 글과 그녀의 체형에 맞는 옷 - 이제는 밥벌이 노릇도 하는 디자인이 특히 그렇다.

세번째 소신

한때는 인정하기 어려웠으나 가족은 그녀 삶의 뿌리와도 같다.

가족
그들은 시간이 무색하게도 다른 점이 많았으나 사랑은 날이 갈수록 다름을 존중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멀리 있을수록 애틋하고 서로를 챙기게 되는 것은 여타 다른 가족들과 다를 바가 없다.

네번째 소신

시간은 현재 그녀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다.

시간
자신에게 주어진 것 중 무엇보다 가치있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다섯번째 소신

사랑에는 다양한 역할이 있다.

사랑
오랜만에 책을 한 권 읽고 있다. 얼마 전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박솔뫼의 백 행을 쓰고싶다를 다 읽은 후, 처음으로 새 집 근처 도서관을 방문했다. 조중걸의 러브 온톨로지 - 사랑에 관해 아주 특별한 정의를 내리는 책이라고 한다. 사랑도 내게 부족한 것 가운데 한 가지라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고있자면 마침내 사랑이 더욱 투명해진다. 사랑은 우리의 감각인식의 대상이 아니므로, 그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또 우리의 언어는 사유를 위장한다(Our language disguises thought.) 그것은 침묵 속에 지나가야 할 어떤 것이기도 하다.

가끔은 상투적인 행동 속에서 사랑이 지겨워진다. 양효실의 불구의 삶, 사랑의 말을 계속해서 읽는 중이다. 책은 가히 충격적일 정도의 시를 내게 계속 읊어준다. 그 말이 알듯 말듯 한 단락을 읽어 내려가며 아, 우리의 삶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짐승처럼 탄식해보자.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고민은 고민이 아닐 것이다. 또 가끔은 내 이름에 갇힌 나를 안쓰러워해보자. 내가 나로 있게끔 만들어준 사람들을 원망해보자. 끝끝내 그들이 미웠다며 복수해보자

조예은의 소설 스노볼 드라이브를 읽었다. 끝 쪽 어느 평론가의 해설에서 '스노볼 바깥세상에서 관찰하며 읽기 시작했는데, 어느샌가 내가 그 안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라는 말이 깊이 공감됐다. 새하얀 눈과 같이 정갈했고, 정갈해서 따뜻하고 따뜻해서 외로운 소설이었다. 사랑을 표현하는 네가 정말 부러워 누군가를 보며 말해주고 싶었지만 대상이 때때로 변해갔다. 말을 건네도 멈추지 않을 사람을 찾아 헤매는 일이 오늘의 일과였다. 혹시라도 있을 내 방의 수상한 흔적을 찾아 헤매는 일은 다름 아닌 엄마의 일과다. 그러면 우리는 모든 것을 내어주고 언젠가 모든 것을 숨길 준비를 내린다. 생각해보았는데, 시는 건네기 힘든 진심을 꼬아 만든 동아줄이 아니었을까. 그것이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얇고 마른 이유겠다